해도 해도 안될 때,
참나코칭이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못하신 분부터
공황장애로 응급차를 30번도 넘게 타신 분까지...
모두 자신의 '밝은 모습'을 되찾아 가셨습니다.

수만 년 동안 캄캄했던 동굴도 등불을 켜서 밝히면 즉시 밝아집니다.
더이상 고민하지 마시고, 참나코칭과 함께 하세요.


37년의 말더듬, 보고 두려움을 극복한 경찰관님/참코디 / 개인코칭 / 40대세 / 남성 / 경찰관

37년의 말더듬, 보고 두려움을 극복한 경찰관님
신** / 개인코칭 / 40대 / 남성 / 경찰관


37년!!! 정성과 집중을 함께 쏟았다면 어떤 분야에서건 능히 일가를 이루고도 남았을 긴 시간을 나는 ‘말더듬’이라는 공포의 대상에 사로잡힌 채 그렇게 보냈다. 철 없던 9살 시절, 같은 반 친구의 버릇을 흉내내고 놀려대다 마침내 온전한 내 것(?)이 되어버린 그 ‘말더듬’은 중요한 순간마다 끼어들어 내 인생을 짓이겼다. 내 마음에 ‘나는 말을 더듬어!’라는 생각이 심어지고, 주변에서 그 생각을 뒷받침해 주는 경험들이 생겨나면서 나는 진정한 ‘말더듬이’가 되어갔다.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 즐거움을 주던 국어 시간은 더할 나위 없는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안겨주는 시간으로 변해갔다. 순서대로 책을 읽어나가곤 했던 초등학교 2학년 국어 시간! 내가 앉은 제일 앞줄부터 시작된 책 읽기는 뒷자리, 뒷자리로 이어졌고, 나는 내 순서가 가까워져 올수록 배가 아파져 오고 숨이 가빠 견딜 수가 없었다.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남들은 1분이면 읽을 분량을 3분이 되어도 읽지 못했고, 선생님의 짜증 섞인 목소리는 “다음!”을 외치곤 했다. 그래도 친구들 사이에 인심을 잃지는 않았는지 5학년 때는 부반장을 맡게 되었지만,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끔 반장이 자리를 비울 때면 내가 수업 전후 경례를 해야 했는데, 모두 참 쉽게도 하는 인사가 내 입을 거치면 “열중~ 쉬어! 차차차차차차차차렷! 겨겨겨겨겨겨경례!”로 늘어졌다. 그럴 때마다 반 친구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얼굴은 화끈거렸고 놀림감이 되었다는 또 하나의 무거운 기억이 한 푼의 낭비도 없이 고스란히 쌓였다.


그 이후 내 학창시절은 소위 ‘대표성을 갖는 직책’과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중학교 시절, 교과서 한 단원을 외워오라는 영어숙제를 남들보다 빨리 암기했다고 생각했지만, 교단에 나가 검증하는 시간에 몇 단어 내뱉지도 못하고 애써 발음을 해내기 위해 얼굴을 일그러뜨리다 야속하고 서러운 몽둥이찜질을 받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진학하고 싶었던 육군사관학교는 면접시험에서 당연히 탈락이 예상되었으므로 포기해야만 했다. ‘말 더듬이는 군대 가면 고쳐진다.’는 말을 위안 삼아 시작했던 군 생활. 보고가 생활화되어 있는 그곳은 보고를 가장 두려워하던 나에게 편할리가 없었다. 성실성을 인정받아 소대장 당번 사병(일명 전령)을 맡게 되었으나 중요 훈련 시 긴급한 무전을 받던 중, 말더듬 증세에 사로잡혀 입을 법리고 인상을 쓰며 특정발음을 뱉기 위해 애쓰던 순간, 아직도 무전 용어를 못 외운다고 오해한 선임병의 주먹을 온몸으로 받아낸 기억만 보태졌다.


스스로를 실패자라 낙인 찍으며 성에 차지 않는 직장생활을 8년 가까이 전전하다가, 정말 운이 좋게도 서른 살이 되어 경찰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관문이었던 ‘면접시험’을 신의 도움이 있었는지 말을 조금만 더듬으면서 통과했던 것이다. 그러나 합격의 기쁨도 잠시, 각종 인사발령 시마다 상관에게 보고해야 했고, 몇 마디 안 되는 ‘보고용어’는 늘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심지어 보고절차가 싫어 한동안 진급시험 자체를 포기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운 좋게도 직급상승이 잘 되어 각종 행사에서 사회를 보는 경우가 많아졌다. 부드럽고 매끄럽게 진행되어야 할 각종 행사는 참석인사들을 일일이 소개할 때부터 틀어졌고, 진행 도중 얼굴을 찡그리며 발음을 해내려고 한참 동안 입을 벌리고 있을 때 참석자들과 눈이라도 마주치게 되면 너무도 큰 부끄러움에 당장에라도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억제했어야만 했다.


‘아! 이렇게 말더듬이로 평생 살아야 하는가?’
각종 인터넷을 뒤져 말더듬증을 치유했다는 기록들, 좋은 방법들을 찾아 헤맸다. 큰소리로 책 읽기, 대인공포를 없애기 위한 각종 권고, 최면치료, 언어치료 등등… 하지만 일시적으로 좋아지다가 이내 제자리를 찾았다. 아무리 기능적인 면을 강화한다 해도 내 마음속에 있는 말더듬에 대한 근원적 생각을 뿌리 뽑지 않고서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참나 코칭센터와 인연이 되어 코칭을 받기 시작했다. 과정은 매주 1회씩이고 총 10회에 걸쳐 진행된 과정은 비용도 부담이었지만,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시간도 적지 않게 소요되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코칭 내용을 깊이 받아들이면서 약 3개월 과정을 끝냈다. 그리고 얼마 후 그곳에서 주최하는 세미나에 참석했다. 마침내 그곳에서, 나는… “제 인생에…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1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할 시간이 주어지리라고는 감히 생각조차 못 했습니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울컥하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발표를 했고, 무려 20분 가까이를 한마디의 말더듬 증상도 없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마무리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있었던 다음 세미나에서는 “이제 마이크가 손에 착착 붙네요.”라는 농담과 함께 역시 잘 마칠 수 있었다. 어린 새끼일 때 말뚝에 매인 코끼리나 송아지는 그때보다 3배나 덩치가 커져도 그 줄을 끊지 못한다고 한다.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자기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기억하는 말더듬에 관련된 모든 기억, 아주 치욕적이고 한없이 부끄럽게만 느꼈던 그 기억들…

그것은 현재의 ‘나’가 아니다. 내가 살짝만 힘주면 끊어질 그런 연약한 밧줄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치욕적 순간이라고 기억하는 그 장소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은 내가 느끼던 백 분의 일만큼도 나를 비웃지 않았을 것임이 틀림없다. 경찰에서 112 신고처리를 하다 보면 자살을 시도하는 이들이 뜻밖에 많다. 긴박하게 그들을 구조하고 진정시켜 대화를 해보면 대부분이 자신의 문제를 실제보다 훨씬 부풀리고 과장하여 ‘극복 불가능한 두려움’으로 포장해 놓고 그 안에 갇혀 버린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나를 37년간이나 말더듬이라는 굴레에 가둬 놓았을까? 알고 보니 그 모든 것은 마음이 부리는 요술이요 장난에 지나지 않았다. 절대적인 마음의 평온을 얻었다는 성인들의 말씀에 의하면 마음은 모든 존재가 하나로 연결된 ‘원초적인 본질’에서 나오며 그 본질에 대한 다른 표현은 사랑, 감사, 싱싱한 생명력, 한없는 기쁨, 행복이라고 한다. 37년 말더듬. 그것에 대한 두려움은 단지 ‘내 본질을 알고 깊이 느끼는 것’만으로 휘청거리며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시원한 해결책을 알려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이미 참나코칭(리얼셀프)에
다녀가신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